이번에는 공손추 하(下)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배웠다. 8장부터 14장까지 아직 확실하게 이해했다 파악했다고 할 수 없기에 우선의 감상을 적고 고칠 생각이다.


公孫丑 下(8~14장)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참으로 구차(苟且)하다는 것이다. 그 자존심 세고, 당당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구차함이라니;; 좀 적응이 안된다.


먼저 9장(燕人畔章)을 보면,


燕人畔. 王曰, “吾甚慙於孟子.”

陳賈曰, “王無患焉. 王自以爲與周公孰仁且智?” 王曰, “惡! 是何言也!”

曰, “周公使管叔監殷, 管叔以殷畔, 知而使之, 是不仁也, 不知而使之, 是不智也. 仁智, 周公未之盡也, 而況於王乎? 賈請見而解之.”

見孟子, 問曰, “周公何人也?” 曰, “古聖人也.”

曰, “使管叔監殷, 管叔以殷畔也, 有諸?” 曰, “然.”

曰, “周公知其將畔而使之與?” 曰, “不知也.”

“然則聖人且有過與?”

曰, “周公, 弟也, 管叔, 兄也. 周公之過, 不亦宜乎? 且古之君子, 過則改之, 今之君子, 過則順之. 古之君子, 其過也, 如日月之食, 民皆見之, 及其更也, 民皆仰之. 今之君子, 豈徒順之, 又從而爲之辭.”


라는 내용이 나온다.


간단히 축약하면 제나라 왕이 맹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하다가 결국 뒤통수를 맞았는데, 진가(陳賈)라는 사람이 왕을 위해 맹자에게 변명하려고 주공(周公)의 일을 끄집어다가 핑계를 댔다. 그러자 맹자가 그 말하는 저의를 알고, 왕과 ‘진가’를 비꼬는 내용이다.


이 9장을 살펴보면 정말 맹자는 명석하다. 과연 지언(知言)이라 할만하다!!

(公孫丑 上 2장-호연지기章 참조)


그런데 8장(以燕伐燕章)을 살펴보자!


沈同以其私問曰, “燕可伐與?”

孟子曰, “可, 子噲不得與人燕, 子之不得受燕於子噲. 有仕於此, 而子悅之, 不告於王而私與之吾子之祿爵, 夫士也, 亦無王命而私受之於子, 則可乎? 何以異於是?”

齊人伐燕. 或問曰, “勸齊伐燕, 有諸?”

曰, “未也, 沈同問‘燕可伐與?’ , 吾應之曰, ‘可’ , 彼然而伐之也. 彼如曰, ‘孰可以伐之?’ 則將應之曰, ‘爲天吏, 則可以伐之.’

今有殺人者, 或問之曰, ‘人可殺與?’ 則將應之曰, ‘可.’

彼如曰, ‘孰可以殺之?’ 則將應之曰, ‘爲士師, 則可以殺之.’ 今以燕伐燕, 何爲勸之哉?”


이 글은 심동(沈同)이란 사람이 개인적으로 맹자에게 “연나라를 쳐도 될까요?” 라고 묻자 맹자가 괜찮다고 하니, 제나라가 연나라를 쳤다. 그 후 어떤 사람이 “제나라에게 권해서 연나라를 치게 했다는데 사실입니까?”라고 하자,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심동이 만약 “누가 연나라를 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봤다면 “천리(天吏)된 자만이 칠 수 있다”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냥 괜찮다는 말만 듣고 옳다구나 하면서 쳐버렸다는 것이다. 지금 연나라나 제나라나 그게 그거인 상황인데 누굴 권해서 누굴 치게 했겠냐?


이런 말인데... 여기서부터 구차하기 시작한다;;


앞에서 분명 자신의 장점을 ‘지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말 ‘심동’이 말하는 의도를 몰라서 그런걸까??


믿을 수 없다. 다시 맹자를 이해하려고 생각해 보자. 과거에 공자께서는 맞춤식 교육을 하셨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절실하게 물어보면 그때서야 알려주시는 교육방침을 세우셨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논어,述而 8장)


또 배울 생각이 있는 이에게만 가르침을 주시는지 우선 묻는 것에 대답하시고, 다시 묻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다시 묻지 않으면 그 뒤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본의를 전달하였다.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논어,爲政 5장)

(아마 번지를 통해서 맹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게 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맹자도 그런 의도 였을까? 정말 그런 의도 였다면 실망은 점점 커져간다.


위의 공자와 ‘맹의자’의 대화는 뒤에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어김이 없는 것! 누구에게 해를 끼치거나 하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충분히 뒤에 이야기 해주어도 될 만 한 일이다.


하지만 공손추 8장은? 나라가 나라를 침범하는 일이다.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어도 엄청나게 죽을 것이고, 피해도 엄청 날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야기를 안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 때문에 사서(史書)에서는 맹자가 정말 제나라에게 연나라를 치도록 권유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뒤에 변명을 했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궁색(窮塞)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리고 10장(致爲臣而歸章)에서부터 제나라를 떠나기 시작한다.


孟子致爲臣而歸.

王就見孟子, 曰, “前日願見而不可得, 得侍同朝, 甚喜, 今又棄寡人而歸, 不識可以繼此而得見乎?” 對曰, “不敢請耳, 固所願也.”


하지만 뭐랄까 붙잡아 달라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클라이맥스는 12장(孟子去齊尹士語人曰章)이다.


孟子去齊. 尹士語人曰, “不識王之不可以爲湯武, 則是不明也, 識其不可, 然且至, 則是干澤也. 千里而見王, 不遇故去, 三宿而後出晝, 是何濡滯也? 士則玆不悅.”

高子以告.

曰, “夫尹士惡知予哉? 千里而見王, 是予所欲也, 不遇故去, 豈予所欲哉? 予不得已也.

予三宿而出晝, 於予心猶以爲速, 王庶幾改之! 王如改諸, 則必反予.

夫出晝, 而王不予追也, 予然後浩然有歸志. 予雖然, 豈舍王哉! 王由足用爲善, 王如用予, 則豈徒齊民安, 天下之民擧安. 王庶幾改之! 予日望之!

予豈若是小丈夫然哉? 諫於其君而不受, 則怒, 悻悻然見於其面, 去則窮日之力而後宿哉?”

尹士聞之, 曰, “士誠小人也.”


떠나면서 혹시나 다시 자기를 불러줄까 싶어서 더디게 가며, 자신을 더디게 간다고 꾸짖는 윤사(尹士)에게 오히려 꾸짖는다. 주(晝)땅을 떠나면서 호연히 돌아갈 마음을 품었다고 하고서도 다시 “내 비록 그렇지만, 어찌 왕을 버리겠는가! 왕은 충분히 선정을 베풀만 하니 왕이 만약 날 쓰신다면 제나라 백성만이 아니라 천하의 백성을 다 편안히 할 수 있다! 왕께서 마음을 고치기를 바라고, 매일같이 그것을 바라고 있다.”

참으로 구차(苟且)하다 못해 애절함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마지막 14장(孟子去齊居休章)에서 맹자가 돌연 안면(顔面)을 바꾼다.


孟子去齊, 居休. 公孫丑問曰, “仕而不受祿, 古之道乎?”

曰, “非也, 於崇, 吾得見王, 退而有去志, 不欲變, 故不受也. 繼而有師命, 不可以請. 久於齊, 非我志也.”


앞의 10장~13장까지의 이야기는 정말 거짓말같다. 그렇게나 아쉬움을 표현했으면서 이제와서 “자신이 제나라에 있었던 것은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녹을 받지도 않았던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니 정말 달변인 것이다.


공자께서는 영인(佞人)을 싫어하신다고 하셨는데, 만약에 맹자가 공자께 직접 친자(親炙) 받을 수 있었다면, 재아(宰我)에 버금가는 미움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P.S : 반대의견이나 다른 생각이 있으신 분은 글을 남겨서 무지몽매한 저를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연어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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